다음은 박완서 선생님께서 20대 중반의 외아들을 잃고 난 뒤, 애통한 마음을 일기처럼 써내려가신 『한 말씀만 하소서』 중에서, 제 가슴을 깊이 울린 표현들을 모아둔 것입니다. 죄송스럽게도, 선생님께서 “세상엔 남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고 염려하신 그 말 그대로, 이 책 속의 여러 심정과 문장들이 제 마음 깊은 곳에 파고들었습니다.
너무도 주옥같은 표현이 많아, 감히 그 아픔을 제 언어로 옮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글 중 제 마음을 울린 구절들을 조심스레 옮겨보았습니다.
저작권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찾아 읽고,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 울고, 치유받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서문 중>
이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입니다. 훗날 활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거나 누가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같은 것을 할 만한 처지가 아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쓴 것입니다.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린 표현들>
나도 억장이 무너지는 비통 외에는 매사가 몽롱한 중에도...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요, 견디기 어려운 수모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잊으라는지. 세월이 약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격렬한 반감이 솟구칠 때도 없다.
내 앞에 펼쳐진 긴긴 하루를 살아낼 생각이 지겹도록 아득하게 느껴진다. 시시때때로 탈진하도록 실컷 울면 그동안이라도 시간을 주름잡을 수가 있는데 그것도 용납 안 되는 하루 동안이란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가.
발작적인 설움이 복받쳤다. 세상엔 남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 남의 고통에 쓸 약으로서의 내 고통, 생각만 해도 끔찍한 치욕이었다. 그 애를 잃고도 죽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 앞날이 얼마나 치욕스러우리라는 게 눈에 보이는 듯햇다. 나는 거러지만도 못하게 헐벗은 마음으로 오래도록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애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 후 이렇게까지 수치스럽고 피폐한 심정이 되어보긴 처음인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고통을 입초시에 올림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위로받고, 내 불행을 양념 삼아 자신의 행복을 더욱 맛있게 음미하고자 대기하고 있을 것 같은 망상에 망상이 꼬리를 물었다. 나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을 적에도 남의 불행에 접했을 떄, 마음 아파하기에 앞서 내 행복을 재확인하며 대견해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 같은 사람도 사는데 그 정도의 자식 걱정으로 저다지도 상심을 하다니. 나는 슬그머니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심통이 났고, 내 고통에다 대면 당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깔보는 마음까지 생겼다.
어디서건 눈치껏 사람에게 계급을 매기고 싶어 하는 내 천박한 버릇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병들거나 다친 짐승은 누가 가르쳐준 바 없이도 그에게 맞는 약초를 가까운 데서 찾아낸다고 한다. 나 또한 내 속에 잠재된 짐승처럼 질기고 파렴치한 생명력이, 죽고만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염치를 거역하고 살길을 냄새 맡고 수녀원 쪽으로 강력하게 이낄린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짐승과 인간이 가장 닮은 본능이야말로 신이 준 능력이거늘 내가 무슨 수로 거역하랴.
자신에게 희망이 있다면,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뿐이라고 고백한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의 나날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이 홀연히 트인 것 처럼 느껴졌다.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 작가는 장애인을 보면서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고 공부 못하는 집애들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명문대 의대생을 둔 어머니의 우쭐함으로 자존감을 느끼고 수녀들을 보면서 젊고 이쁜 나이에 뭐가 모자라서 수녀가 되었나 딱해하고 수녀들의 복장으로 계급을 매기는 버릇이 있었다. 종국에는 이렇게 자식을 먼저 보낸 첨착을 한 에미로서 벌 받은 원인을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데서 찾고, 자신의 원초적인 본능인 '먹고, 싸고, 자는데' 집중하면서 서서히 회복하여 자신의 삶속으로 돌아온다.
📝 “울 수 없었던 날들에 대하여”
세상에는 울 수 없었던 날들이 있다.
울지 않아서가 아니라, 울 틈조차 없이 정신이 멍했고,
눈물이란 것이 더는 나오지 않을 만큼 다 말라버렸던 날들.
그저 숨 쉬는 것도 벅찬 날들이 있다.
박완서 선생님은 "그 애를 잃고도 죽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 앞날이 얼마나 치욕스러우리라는 게 눈에 보이는 듯했다"고 했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숨을 참았다. 그 문장을 이해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로하고 싶어한다.
그 진심을 모르지 않지만, 때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것이 더 따뜻하다.
“세월이 약이야.”
“잊고 살아야지.”
그 말들 속엔 ‘당신의 아픔을 견디는 나’라는 작은 우월감이 묻어 있는 걸 나는 안다.
그걸 나도 한때 했던 말들이었으니까.
그날들엔 자꾸 생각이 복잡해졌다.
누구는 자식을 잃고도 견디고 있다는데,
누구는 병을 이겨냈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도 작고 초라하게 무너져 내리는가.
나조차 나를 깔보게 되는 날들.
내 고통이 남의 고통보다 더 깊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부끄럽고 서글픈 마음.
그래도.
그럼에도.
나는 살아내고 있었다.
그건 질긴 본능이었다.
먹고, 자고, 다시 눈을 뜨고,
아무도 없는데도 시간을 흘려보내고,
마침내는 햇살이 눈부시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
박완서 선생님은 “병들거나 다친 짐승은 누가 가르쳐준 바 없이도 그에게 맞는 약초를 찾아낸다”고 썼다.
그 글을 따라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내 안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 삶, 살아가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
울 수 없었던 날들에 대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괜.찮.다. 잘 견겼다.
그리고 이제는 기도한다.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주심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