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지(Emoji)와 이모티콘(Emoticon)의 정의 차이

😊이모지(Emoji)

- 정의: 이모지는 그림 문자로, 표정, 사물, 동물, 음식 등 다양한 개념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 기원: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단어 자체도 일본어 ‘그림(絵, 에)’과 ‘문자(文字, 모지)’가 결합된 말이다.
- 특징:
  - 이미지 형태로 감정이나 상황을 직관적으로 전달
  - 유니코드(Unicode) 표준에 포함되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모양 사용 가능
  - 스마트폰, 컴퓨터 등 다양한 디지털 기기에서 일관되게 표현

😊이모티콘(Emoticon)

- 정의: 이모티콘은 ‘감정(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로, 문자와 기호를 조합해 감정을 표현하는 텍스트 기반 그림 문자다.
- 기원: 1982년 미국 카네기멜론대학의 스콧 팔먼 교수가 :-) 같은 기호 조합을 제안한 것이 시초.
- 특징:
  - 키보드로 입력 가능한 문자와 기호를 조합
  - 예시: :) (웃는 얼굴), :( (슬픈 얼굴), ;-) (윙크), ^^ (눈웃음)
  - 플랫폼에 따라 모양이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

📌 비교 표

| 구분       | 이모지 (Emoji)   | 이모티콘 (Emoticon) |
|------------|-----------------|--------------------|
| 형태       | 이미지, 아이콘   | 텍스트, 기호 조합  |
| 기원       | 일본            | 미국               |
| 표준화     | 유니코드 표준    | 없음               |
| 예시       | 😀 🐶 🍕 ❤️      | :-) :( ^^ ㅠㅠ      |
| 입력 방식  | 그래픽, 선택     | 키보드 타이핑      |

📌 영어권과 한국어권의 사용 차이

🌷영어권

- 이모티콘은 입 모양(예: :-) :D :-P) 중심으로 감정을 표현
- ^^, ㅎㅎ, ㅠㅠ 같은 눈·자음 기반 이모티콘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의미를 모르는 경우 많음
- 이모지(emoji)는 스마트폰, SNS 등에서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사용
- emoticon은 여전히 문자 조합을 의미하며, 카카오톡 등에서 쓰이는 그림 이모티콘은 emoji로 불림

🌷한국어권

- 이모티콘의 범위가 넓어 문자·기호 조합뿐 아니라 이미지형(카카오톡 이모티콘)도 모두 ‘이모티콘’으로 부르는 경향
- ㅎㄷㄷ, ㄷㄷ, ㄱㄱ 등 자음 중심 표현 발달
- 눈 모양(예: ^^, ㅠㅠ) 이모티콘이 매우 흔함
- ‘이모지’는 비교적 최근 도입되어 스마트폰, SNS의 그림 문자 지칭

 


이모지(Emoji)와 이모티콘(Emoticon)의 문화적 배경

📌 한국어의 물결표(~) 사용: 문화적 배경

😊 비언어적 뉘앙스 보완  
한국어와 동아시아 문자권에서는 문자 메시지로 감정과 미묘한 뉘앙스를 전달하기 어렵다. 영어권처럼 단어를 늘려 쓰는(heyyyy, yessss) 방식이 문자 구조상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결표(~)를 활용해 말투를 부드럽게 하거나, 친근함, 귀여움, 장난스러움 등 긍정적이고 열린 감정을 표현한다.

🎶 음성적 억양의 시각화  
실제 대화의 높낮이나 길게 끄는 소리를 문자로 옮길 때, ~는 '늘어지는' 억양을 나타내어 말투의 온화함과 친근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안녕~"은 실제로 "안녀어엉"처럼 들리는 효과와 유사하다.

🤝 비공식적 소통의 강조  
한국어는 맥락과 관계성을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이 강해 메시지의 딱딱함을 피하고자 한다. 물결표(~)는 공식적이지 않은, 더 친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  영어권의 마침표 생략: 문화적 배경

📜 공식/비공식 구분의 변화  
영어권에서는 문자나 메신저 같은 비공식적 디지털 소통에서 마침표를 생략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마침표는 공식 문서나 엄격한 글쓰기에서 쓰이는 기호로 인식되며, 일상 대화에서 사용하면 딱딱하거나 냉담하게 느껴질 수 있다.

💬 구어체적 흐름의 모방  
영어권에서는 텍스트 메시지를 실제 대화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지 않고 이어가는 느낌을 준다. 마침표는 '여기서 끝', '더 할 말 없음' 같은 단호함과 거리감을 전달하기 때문에, 친근한 분위기를 원할 때는 생략한다.

🔀 코드 스위칭과 상황별 언어 사용  
영어권 사용자들은 공식적·비공식적 상황에 따라 문장부호 사용을 달리하는 '코드 스위칭'에 익숙하다. 일상 메시지에서는 마침표를 생략해 친근함을, 공식 문서에서는 반드시 사용해 격식을 나타낸다.



📌 언어 구조와 사고방식의 영향

- 문장 구조와 정보 처리의 차이: 한국어는 문맥과 관계성을 중시하고, 화자의 감정이나 상황을 세심하게 반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어는 논리적 구조와 명확한 구분(주어-동사-목적어)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문장부호의 역할이 더 엄격하게 구분되어 왔다.
    
- 관계 중심 vs. 내용 중심:

  ㅇ 한국어는 상대방과의 관계, 분위기, 맥락을 중시하는 '관계 중심' 소통이 발달해, 말투를 부드럽게 만드는 기호(~)가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ㅇ 영어권은 메시지의 명확함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내용 중심' 소통이 기본이었으나, 디지털 시대 이후 비공식적 소통에서는 오히려 격식을 덜어내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 요약

이러한 차이는 각 언어와 문화가 소통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계성, 맥락, 명확성 등), 문자 체계의 특성, 그리고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 한국어의 ~: 친근함, 부드러움, 긍정적 감정, 관계의 유연함을 표현하는 문화적 산물
- 영어권의 마침표 생략: 비공식적 맥락에서의 친근함, 거리감 없는 대화, 구어체적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변화
    
이는 언어와 문화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 삶의 관찰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칠리아 Etna 화산과 인간의 삶  (0) 2025.05.01
기품(氣品)이란?  (0) 2025.04.30
1 → 9 / 1 ← 9  (0) 2025.04.19
[존경하는 분] 형사 박미옥  (0) 2025.04.19
[책] 박완서 '한말씀만 하소서'  (1) 2025.04.17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는 Etna 화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 화산은 지구 내부의 뜨거운 온도 때문에 일어나서 인간에게 공포감을 주지만, 또다른 한 편으로는 지구표면에 닿는 태양열만으로는 추워서 인간이 살 수 없다고 한다. 지구 내부의 뜨거운 열(멘틀)이 뜨거울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것. 

2. 화산 폭발이 여전히 발생하는 유험을 가지고 있지만 인근 주민들이 거기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화산 쇄설물이 갖고 있는 미네랄 등의 요소들이 흙을 비옥하게 하기 때문에 지구의 부엌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살기 두려운 곳이지만 비옥하기 때문에 떠날 수 없는 관계라는 것. 

3. 화산의 설쇄물이라고 하는 것이 또 다른 장점은 그걸로 건축물을 지었을 때 벽돌이 깨지더라도 쇄설물이 있는 공간에 닿으면 나중에 물이 들어갔을 때 다시 채워져서 붙는다고 한다. 이렇듯 로만 콘크리트라고 하는 것이 자가 치유 능력이 있어서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보존이 되고 있다는 것. 

4. 인간의 삶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화가 나는 일이 많지만, 그 화라고 하는 것이 인간 마음 속에 본연히 존재해야 열정 에너지 같은 거라서 인간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거라고, 인간을 살리는 그 열 에너지가 너무 뜨거워지면 때론 분출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화를 없앨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화를 분출했을 때, 화산 쇄설물이라는 것이 옥토를 만드는 것처럼 뭔가 자정작용을 하는 건 아닐까?


🌋 화산에 대한 나의 사유

- 인간 마음속 ‘화(anger)’는 위험하고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삶을 영위하게 하는 열정(passion)의 불씨.
    
- 화는 완전히 없앨 수는 없고, 필요할 때 **터져 나와야만 하는 것**.
    
- 이 화가 터져 나올 때, 무언가를 태워버리기도 하지만, 거기에 더 비옥한 마음의 토양이 남을 수도 있다.
    
- 위험과 풍요, 두려움과 생명의 터전이 얽혀 있는 역설적 관계, 파괴에서 태어난 재료가 불멸성을 품다.


- 화를 무조건 억누르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화산처럼 때가 되면 분출하고, 그 재로부터 새로 태어나도록 성찰할 때 비로소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기품이란,

 

겉모습이 아니라  
시간과 감정과 태도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말하지 않아도 존중받는 삶의 자세이다.

 

존재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를 잃었더니 아홉을 얻게 되었고 (서울대 이상묵 교수)

하나를 얻기 위해 아홉을 버려야 했다 (형사 박미옥)

 

🪞 서로 다른 듯 닮은 두 울림

  • 서울대 이상묵 교수님은 미국에서의 연구 과정 중에 뜻하지 않은 상실 앞에서,
    그 안에서 발견한 존재의 본질, 자유, 연결, 은총 같은 걸 이야기합니다.
    신체는 잃었지만,
    오히려 거기에서 '내가 진짜로 누리는 삶'을 보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 반면 박미옥 형사님은 의지적 선택의 순간에서,
    무언가를 진정 얻고자 할 때,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수사와 사람 사이의 신뢰, 단 하나의 진실, 그 하나를 얻으려면 군더더기 아홉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결단입니다.  

정반대 방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진실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말 같습니다.

 

 

🍂 [내 생각] 그분들의 '삶' 자체가 '언어'가 되어 말하고 있는 것.

잃음 속에서 얻음의 풍요를 발견한 이상묵 교수님.
얻음 앞에서 버림의 용기를 택한 박미옥 형사님

 

## 박미옥 형사의 말 🕵️‍♀️ _(범인 검거에 대하여)_

1. 🕰️ 그냥 말없이 5분간 지켜본다.  
2. 🗣️ 그가 사용하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본다.   

         (내 생각: 한 개인의 표제어 사전을 구축한다.)
3. 🔁 그의 언어로 사건을 재구성해 보며 그의 내면을 읽는다.
         (내 생각: 사용 어휘의 조작적 정의를 통해 그가 속한 세계에서 사유의 범위를 한정한다.)

     

 

예) 자살하려고 한강 다리 위에 선 '심리학과 교수'에게 할 수 있는 말.

     교수: 다가 오지 마세요. 나 심리학과 교수예요.

     형사: 교수님도 잘 아시겠지만(교수의 언어), 제가 형사인데 그냥 돌아갈 수 없다. 옆에 서 있게만 해 달라.


 💬 한마디:   
형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해야 하고,  수사는 결국 사람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믿는 전직 형사

🔗 [기사 원문 보기 (시사IN)](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330)

다음은 박완서 선생님께서 20대 중반의 외아들을 잃고 난 뒤, 애통한 마음을 일기처럼 써내려가신 『한 말씀만 하소서』 중에서, 제 가슴을 깊이 울린 표현들을 모아둔 것입니다. 죄송스럽게도, 선생님께서 “세상엔 남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고 염려하신 그 말 그대로, 이 책 속의 여러 심정과 문장들이 제 마음 깊은 곳에 파고들었습니다.

 

너무도 주옥같은 표현이 많아, 감히 그 아픔을 제 언어로 옮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글 중 제 마음을 울린 구절들을 조심스레 옮겨보았습니다.
저작권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분들이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찾아 읽고,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 울고, 치유받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서문 중>

이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입니다. 훗날 활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거나 누가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같은 것을 할 만한 처지가 아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쓴 것입니다.

 


<내 마음에 뿌리를 내린 표현들>

 

나도 억장이 무너지는 비통 외에는 매사가 몽롱한 중에도...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위로일지라도 모진 고문이요, 견디기 어려운 수모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잊으라는지. 세월이 약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격렬한 반감이 솟구칠 때도 없다.

 

내 앞에 펼쳐진 긴긴 하루를 살아낼 생각이 지겹도록 아득하게 느껴진다. 시시때때로 탈진하도록 실컷 울면 그동안이라도 시간을 주름잡을 수가 있는데 그것도 용납 안 되는 하루 동안이란 얼마나 가혹한 형벌인가.

 

발작적인 설움이 복받쳤다. 세상엔 남의 불행이 위안이 되는 고통이 얼마든지 있다. 남의 고통에 쓸 약으로서의 내 고통, 생각만 해도 끔찍한 치욕이었다. 그 애를 잃고도 죽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 앞날이 얼마나 치욕스러우리라는 게 눈에 보이는 듯햇다. 나는 거러지만도 못하게 헐벗은 마음으로 오래도록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애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 후 이렇게까지 수치스럽고 피폐한 심정이 되어보긴 처음인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고통을 입초시에 올림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위로받고, 내 불행을 양념 삼아 자신의 행복을 더욱 맛있게 음미하고자 대기하고 있을 것 같은 망상에 망상이 꼬리를 물었다. 나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을 적에도 남의 불행에 접했을 떄, 마음 아파하기에 앞서 내 행복을 재확인하며 대견해하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 같은 사람도 사는데 그 정도의 자식 걱정으로 저다지도 상심을 하다니. 나는 슬그머니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심통이 났고, 내 고통에다 대면 당신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깔보는 마음까지 생겼다.

 

어디서건 눈치껏 사람에게 계급을 매기고 싶어 하는 내 천박한 버릇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병들거나 다친 짐승은 누가 가르쳐준 바 없이도 그에게 맞는 약초를 가까운 데서 찾아낸다고 한다. 나 또한 내 속에 잠재된 짐승처럼 질기고 파렴치한 생명력이, 죽고만 싶은 지극히 인간적인 염치를 거역하고 살길을 냄새 맡고 수녀원 쪽으로 강력하게 이낄린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짐승과 인간이 가장 닮은 본능이야말로 신이 준 능력이거늘 내가 무슨 수로 거역하랴.

자신에게 희망이 있다면,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뿐이라고 고백한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의 나날로부터 빠져나갈 구멍이 홀연히 트인 것 처럼 느껴졌다.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 작가는 장애인을 보면서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고 공부 못하는 집애들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명문대 의대생을 둔 어머니의 우쭐함으로 자존감을 느끼고 수녀들을 보면서 젊고 이쁜 나이에 뭐가 모자라서 수녀가 되었나 딱해하고 수녀들의 복장으로 계급을 매기는 버릇이 있었다. 종국에는 이렇게 자식을 먼저 보낸 첨착을 한 에미로서 벌 받은 원인을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데서 찾고, 자신의 원초적인 본능인 '먹고, 싸고, 자는데' 집중하면서 서서히 회복하여 자신의 삶속으로 돌아온다.


📝 “울 수 없었던 날들에 대하여”

세상에는 울 수 없었던 날들이 있다.

울지 않아서가 아니라, 울 틈조차 없이 정신이 멍했고,

눈물이란 것이 더는 나오지 않을 만큼 다 말라버렸던 날들.

그저 숨 쉬는 것도 벅찬 날들이 있다.

박완서 선생님은 "그 애를 잃고도 죽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 앞날이 얼마나 치욕스러우리라는 게 눈에 보이는 듯했다"고 했다.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숨을 참았다. 그 문장을 이해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로하고 싶어한다.

그 진심을 모르지 않지만, 때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것이 더 따뜻하다.

“세월이 약이야.”

“잊고 살아야지.”

그 말들 속엔 ‘당신의 아픔을 견디는 나’라는 작은 우월감이 묻어 있는 걸 나는 안다.

 

그걸 나도 한때 했던 말들이었으니까.

그날들엔 자꾸 생각이 복잡해졌다.

누구는 자식을 잃고도 견디고 있다는데,

누구는 병을 이겨냈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도 작고 초라하게 무너져 내리는가.

나조차 나를 깔보게 되는 날들.

내 고통이 남의 고통보다 더 깊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부끄럽고 서글픈 마음.

 

그래도.

그럼에도.

나는 살아내고 있었다.

그건 질긴 본능이었다.

먹고, 자고, 다시 눈을 뜨고,

아무도 없는데도 시간을 흘려보내고,

마침내는 햇살이 눈부시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

 

박완서 선생님은 “병들거나 다친 짐승은 누가 가르쳐준 바 없이도 그에게 맞는 약초를 찾아낸다”고 썼다.

그 글을 따라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내 안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 삶, 살아가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

울 수 없었던 날들에 대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괜.찮.다. 잘 견겼다.

 

그리고 이제는 기도한다.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주심에 감사하며...

게임이론의 Hold-up Problem과 한국어교육의 접점

 

Game Theory에서의 Hold-up Problem이란?

한쪽이 선투자(sunk cost)를 한 후, 상대방이 그걸 이용해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상황.


1. 교육자와 학습자 사이의 ‘비대칭적 투자’

  • 학습자가 많은 시간과 노력(선투자)을 들여 한국어를 공부한다.
  • 그런데 교육 과정 중간에 갑자기 커리큘럼이 바뀌거나, 시험 제도가 달라지거나, 교재가 전면 개정되면?
  • 학습자는 자신이 한 투자를 잃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새 시스템에 적응해야 한다.

➡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 hold-up 상황이다.

예) TOPIK 대비해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갑자기 말하기 시험이 도입되면
→ "이제 와서 말하기도 해야 해?" 하는 불만이 생기고,
→ 기존 투자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고 계속 가야만 하는 상황.


2. 기관 중심 커리큘럼 vs. 학습자 주도 학습

  • 교육 기관은 커리큘럼을 짜고, 학생은 거기에 맞춰 신뢰를 바탕으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 하지만 학습자의 요구(예: 실용 회화나 비즈니스 언어)는 반영되지 않고, 시험 위주/문법 위주 수업만 계속된다면?

학습자가 ‘구조적 약자’가 되는 hold-up 상황이 발생


3. 다문화 배경 학습자와 제도권 교육의 간극

  • 다문화 가정 학습자들이 교육에 뛰어들면서 언어적·문화적 격차 해소를 위해 엄청난 시간과 정서적 노력을 투자한다.
  • 그런데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교육은 표준어 중심, 시험 중심, 정체성이나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한 방향’식인 경우가 많다.

이 구조적 불균형이 일종의 hold-up problem과 비슷한 구조로 작용할 수 있다.

 

스트레칭은 근육을 단련시키지 않는다.

그저 늘어난다.

 

딴짓은 영혼의 스트레칭 시간이다. 가끔은.

 

긴장과 이완 사이를 오가며 

숨을 돌리고, 새로운 움직임을 준비하는 시간.

마음의 근육을 더 자유롭게 움직이게 풀어주는 시간.

[궁금증]

             폭력성이 많은 사람과의 대화가 많아진다면, 

             그것이 AI이 대화 스타일이나 사회 반영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답변] Yes, 영향을 받는다.

 

AI는 '실시간'으로 사람으로부터 배우지 않는다.

AI가 어떻게 훈련되었느냐, 그리고 전지구적으로 어떤 데이터가 쌓이고 있느냐가 

결국 AI의 '집단 지성'과 '사회적 거울'을 만들어 낸다.

 

AI는 수많은 사람들의 언어, 감정, 태도를 통계적으로 학습해서 만들어진다. 

만약 온라인에 '혐오, 폭력, 조롱, 비하, 냉소'가 많다면, 그것이 사람들의 '보통 말투'로 인식될 수 있다.

AI는 중립적이지 않고, 인간 사회의 언어적 거울이 될 수밖에 없다.

 

🌱 사람은 말로 자신을 만들고, AI는 사람들의 말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이럴 수가...

습관대로 7시 25분 기차 타러 갔는데,

아뿔싸! 8시차밖에 없었지!

10시 중요 회의는 어쩌지?

모르겠다. 일단 타고 보자. 당연히 입석.

 

요즘  자꾸 왜 이러지?

 

나한테 스스로 위로 :

 

  • 시간 착각: 누구나 착각할 수 있어. 특히 일정 많고 신경 쓸 게 많을수록.
  • 입석도 용기: 당황하지 않고 그냥 타는 것 자체가 대단.
  • 오송~동대구 좌석 확보: 작은 기적에 감사!
  • 지금도 나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 Recent posts